당신께.

2008. 12. 23. 11:36journal

그렇게.
살포시 날아와 앉은 듯한 모습으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었습니다.
나는 버벅거릴 뻔 했었지만... 험험...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했었죠.

이거 위험하겠는데...

사람들이 그런 문제로 뭐라하는 것에 별로 신경쓰고 살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마음이 흔들렸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당신께 말입니다.

그 첫 자리때, 제가 느끼해 보인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체온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저의 두서없는 이야기들...
팔이 닿았을 때, 살짝 놀랐었습니다. 쫌 긴장도 했었고... 갑작스레 옆에 앉다보니 긴장을 바짝.

당신이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날.
그러니까 당신이 수업이 끝난 후에야 안대를 하고 나타났던 날.
사실 아침부터 눈으로 계속 당신을 찾았더랬습니다. 다른 이름들을 아침부터 불러대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안 나오더군요.

당신이 그 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살짝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언니, 빨리 들어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제깍 고개를 돌렸습니다.
머뭇거리는 당신의 모습에...
내 딴에는 부드럽게 농담한답시고... 얘기했었죠. '내외하시냐고'.
저도 제 목소리와 말투에 순간 당황했었습니다. 갑자기 방금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같은 목소리에 ㅜ.ㅜ
(암튼)그 날 알았죠. 당신과 계란의 악연.

그로부터 쭉 제 핸드폰 메모장에는 계란, 생선, 라면, 와사비, 조미료... 개불, 회, 청국장, 우거지, 닭발, 떡볶이, 편의점 족발, 멍게, 식초, 설탕없는 커피, 옥수수, 고구마 등의 (왠지 개연성없는)음식이름들이 리스트업 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말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느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러다가 애들한테 이상한 소문 나는거 아닐까...  그렇게 과감(한 척 소심)하게 마주 앉았었죠. 그렇게 말을 나누다가...

흠... 그때의 당신의 느릿한 미소와, 모으고 있던 발과, 나작히 아래로 깔던 당신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다음 날.
당신이 아시는 것처럼.
그렇게 그 날이 기억할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릿느릿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던, 땅을 쳐다본 내 눈에 들어온 당신의 걸음을 기억합니다.
나의 얼굴에 흐른 땀을 처음으로 닦아주던 당신의 손가락과 그 감촉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목소리도.

자전거와 설렁탕. 정말 사이가 안나빠졌으면 좋겠다던 당신의 말. 커피가게. 처음으로 본 당신의 안경을 벗은 화장한 얼굴(도끼도끼했습니다.)

좋았던 시간이 흐르면서..

못난 제 모습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죠. 제 열등감과 질투와 의심들. 당신을 힘들게 했던 그것들.
인간사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제 실패는 이런 것들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름의 논리로 저를 포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그것이 숨어있었습니다. 불안.
불안하다는 것은 저를 의심하는 일입니다.
제 인간성과 제 능력과 제 사람됨과 저의 존재.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었죠. 아니... 깨닫지 못했던 거겠죠.
내가 스스로를 잘 포장하고, 당신께 뭔가를 들이대면서 나를 주장했으니까요. 저도 저한테 속았습니다.

그 못난 행동들의 대한 당신의 반응은 (그 당시엔 이해도 안가고 무섭기도 했지만)참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힘들면서도 제 곁에 있어 주었고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채찍으로 제가 깨닫고 변화하도록, 노력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처음의 여리여리하고 곱기만 했던 당신에 대한 저의 이미지는 지금은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따뜻하고 강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린 입술로 얘기해주면 그것이 저에게는 큰 울림이 됩니다.
당신이 여린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그것이 저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큰 응원이 됩니다.

저는 저의 불안을 아직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걸 정복하고 죽은 사람은 없을거라는 것 정도겠죠.) 하지만 제 마음 속과 껍데기를 눈 부릅뜨고 똑바로 쳐다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곁에 함께 있어 준다면 나는 좀 더 정신차리고 눈을 부릅 뜰 것 입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있고 당당하게 그것과 싸워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땀을 뻘뻘 흘릴 때 만나서, 이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함께 눈이 오는 길을 달렸었죠.
우리가 맞는 첫번째 크리스마스 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가 뭐 그렇게 중요하고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과, 새로운 해를 준비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들뜬 분위기에 편승해서 같이 놀아보자는 거죠.^^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던... 당신이 얘기하는 것처럼 제가 그렇게 건조한 인간이라면...
아마 앞으로 좀 재미없어질 수도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하는 고백과 결심이 아마 희미해 질수도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제 기억력이 그닥 좋지 못한 관계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이 글을 이곳에 올립니다.
언제던 제가 잘못하고, 노력하지 않고, 재미가 없어진다면 2008년 12월 23일에 제 도메인인 http://junggamdok.kr에 올린 글을 기억해내십쇼. 그리고 제 얼굴에 들이대십시오.
아니면 Ctrl + C, Ctrl + V해서 당신의 메모리에 저장해 두셨다가 출력해서 들이대셔도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너무나 중하고 따뜻합니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