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전거다] 자전거를 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라는 제목의 쿠키뉴스 기사.

2007.09.04 17:53journal

[쿠키 사회]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에 사는 이모(47)씨는 올 봄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치솟는 기름값과 불어나는 뱃살이 원인이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직장까지는 자전거로 1시간40분 거리. 6개월간의 자전거 출퇴근으로 이씨의 체중은 6㎏이 줄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출족(自出族)'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회원수는 13만명을 넘었다. 국내 최대의 산악자전거 동호회인 '와일드 바이크'의 회원수는 11만2000명,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자여사'의 회원수는 2만5000명에 달한다. 현재 네이버에는 회원수 1000명 이상의 자전거 카페가 20여개 된다. 자전거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200만대 가량의 자전거가 판매됐다. 자전거 판매량은 지난 5년 사이 2배로 증가했다.

강이나 하천, 공원 주변에서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은 최근 자전거를 끌고 시내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차도를 달려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지하철이나 고속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수단에 자전거를 싣는다. 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지방국도를 달리는 여행자들도 늘고 있다. 건강과 여가의 수단이던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발바리'라는 자전거 단체는 매월 한 차례씩 차도를 점거하고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집단 주행을 한다. 자전거도 차도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위다. 그동안 차도를 독차지하던 자동차들은 자전거와의 공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시민들에 의해 시작된 자전거 열풍은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적 지원을 받으면서 도시를 바꾸는 교통혁명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은 자전거도로 확충, 공영 자전거 등 자전거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자전거 전담 부서를 두는 곳도 늘어난다. 저개발의 상징이었던 자전거가 21세기에 국가적 화두로 부상한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최진석 박사는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국내 지자체들도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서 "많은 도시 전문가들이 자전거를 교통난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열풍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다.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영국,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에서 자전거 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자전거 열풍은 등산 열풍이나 마라톤 열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는 건강과 여가에 대한 관심, 고유가시대의 대체 교통수단 등과 같은 개인적 동기 뿐만 아니라 교통난 해소라는 정책적 동기, 그리고 환경을 살리려는 윤리적 동기 등이 결합돼 있다. 박찬석 민주신당 의원(자전거학회 부회장)은 "자전거 열풍은 자동차로 상징되는 20세기적 성장주의 문명에 대한 성찰이 시작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자전거 혁명이 시작됐다. 본보는 앞으로 3개월에 걸쳐 '이제는 자전거다'를 연재한다. 자동차 중심의 삶과 도시를 바꾸는 자전거 혁명을 통해 우리 시대의 고민인 교통과 환경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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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 죽 긁어와서 글 올리는 건 별로 안하고 싶었던 짓이기는 한데, 마침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에 뜬 글이라 가져와봤다. 앞으로 3개월에 걸쳐 연재를 한다고하니 기대 좀 해봐야겠다. rss등록 해 놓았으니 날라오겠지.

2. 20세기적 성장주의 문명에 대한 성찰. 흠. 이명박후보가 대세인 이 분위기에서 그냥 순수한 분석으로만 들리지는 않는군.

3. 교통난 해소라는 정책적 동기, 그리고 환경을 살리려는 윤리적 동기... 뭐 동의한다.

4. 나에게 있어 작가 '김훈'. 소설에 대해서는 열광하는데 다른 글은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샀던 어떤 책의 곁다리로 껴들어온 '자전거 여행'. 책장에 쳐박아 두었었는데 자전거를 산 후 펴들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쳐박기는 했지만.)

5. 랜스 암스트롱.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은 들어왔었는데, 요즘 한국에서 급부상했다. 그리고 'Tour de Korea'가 열리고 TV에서 중계를 한다. 자전거가 확실히 주목받고 있기는 하다. 나는 그리 유행에 민감한 인간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운동을 할까 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는데, 왠지 굉장히 시류에 편승하고 있는 느낌이다.

6. '히카루의 바둑' 그러니까 우리나라 제목으로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만화였던걸로 기억한다. 주인공 꼬마에게 붙어있는 헤이안 시대의 바둑귀신(표현이 좀 그런가. 꽃미남이던데.)이 주인공의 우산을 보고 말한다. 이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고. 자전거도 그런 것 같다. 카본이니 티타늄이니 몇단 변속기어니 어쩌고 해도, 기본원리는 달라진게 없다. 결국 사람이 밟아서 앞으로 나아간다.

7. 자전거 관련 책 한권 구입. 쭉 훑어보고 느낀 점은, 뭐든 제대로 해볼라고 하면 어렵다는 것. 자전거도 나한테는 어려운 기계더라.

8. 내가 느끼는 매력은. - 내 허벅지에 들어가는 힘. 내가 내는 속력과. 바람. (좀 거칠게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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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선생2007.09.05 03:08

    몸을 움직여서 얻는 원초적인 기쁨이 또...꽤 크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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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2007.09.05 07:55

    아~ 그래서 자전거 타는사람 물어보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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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哲監督2007.09.05 19:48

      먼저 타던 사람들 있으면, 조언을 좀 구하려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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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의 전당2019.02.07 21:58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존재한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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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